이것은 사악한 저주에 걸린 어느 공주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숱한 이야기 속의 수많은 공주님들이 그러하듯, 츠메카린 왕국의 제1왕녀 뮤레리카 사키아 츠메카린도 성에 갇혀 살았다. 하지만 이 공주님을 가둔 것은 사악한 마왕이나 나쁜 용이 아니었다. 그녀가 짊어진 지위와 이름의 무게였다.
“마수가 나타난 곳은 북문 쪽인가?”
왕녀, 뮤레리카 사키아 츠메카린은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는 거친 걸음으로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거대한 홀을, 웅장한
복도를, 성벽을 담으로 둔 긴 길을 달리다시피 지나 성문 밖으로 나섰다. 그동안 왕녀를 호위해야 할 주변 사람들은 호위는커녕
수행하는 것조차 벅차 우왕좌왕하며 뒤늦게 그 뒤를 쫓았다. 그나마 빨랐던 몇몇이 왕녀를 말리려고 했으나 그럴 새도 없이 그녀는
마구간에서 직접 말을 끌어내어 달려갔다.
북문은 이미 전장이었다. 마수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고,
천은 돼 보이는 병사들이 그와 대치하여 진을 진 채 마수에게 창을 던져 공격하고 방패를 들어 방어하다 마수의 몸짓 한 번에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말에서 내린 왕녀가 그에게 다가가려 하자 지금 대치하고 있는 군의 지휘관인 듯한 자가 막아섰다.
“안 됩니다, 공주님.”
왕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명령했다.
“저들을 물러나게 해.”
“당치도 않습니다! 성을 지키고자 있는 자들입니다. 이 상황에서 물러나라니요.”
“저건 내가 상대해.”
“안
됩니다, 공주님. 매번 말씀드리지만 이릴 때 싸워야 하는 것은 저희입니다. 당신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기서 또 물러서면 제
체면이 살지 않습니다. 공주님께서 전투와 피에 몸이 달으신 건 잘 알고 있으나, 제발 기품을 생각하시어…!”
찰싹. 그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소리와 마찰음이 울렸다. 뺨을 맞은 지휘관은 얼얼한 채 굳어 앞을 바라보았다. 츠메카린 왕족의 특징이라는 금빛 눈동자가 형형히도 빛나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체면? 기품? 그게 당신들의 목숨보다 소중해? 그 잘난 것 때문에 지금 저기서 당신의, 내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는 걸 내버려둬야 할 만큼 대단하냐고!!”
입술을 깨문 지휘관이 대꾸했다.
“네, 중요합니다. 그것이 지금 저희가 여기에 있는 명분이고 긍지입니다. 희생을 감수해도 이 싸움은 저희가 치러내야 합니다.”
“…….”
이번에는 왕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이런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유가
뭐든 저기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이 지켜야할 자신의 사람이었다. 왕녀는 다시
지휘관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쏘아붙였다.
“당신, 5분 내로 저 마수 끝장낼 수 있어?”
“…….”
지휘관은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왕녀는 재차 물었다.
“전력의 손실 없이, 성을 훼손하지 않고, 뒤처리할 골치 아픈 일이 없게 처리할 수는 있어?”
“…….”
“난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비켜.”
지휘관은 못마땅한 듯 입술을 실룩거렸으나 결국 물러났다. 왕녀가 한 말이 진실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체된 시간에 마음이 급했던 왕녀는 그쪽은 거들어보지도 않고 앞으로 향했다. 퇴각 명령은 내릴 필요도 없었다. 왕녀가 다가오는 것을 본 병사 하나가 소리를 질러 그를 알렸고, 그것이 파장처럼 번져나가 병사들은
앞 다투어 도망갔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이 형식적인 절차였다. 지휘관의 생각이 어떠하든 그 형식적인 절차에 목숨을 던지고 싶어할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츠메카린의 성내에 수시로 마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왕녀가 15세가 되던 해의 일이었다.
원
인은 알 수 없었다. 마법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내에 차원의 흐름이 뒤틀린 곳이 존재하여 그곳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리라 했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었다. 아마도 대마국의 소행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어디서 솟아난 건지도 모를 마수는 나타날 때마다 번번이
성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고, 성의 병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가뜩이나 재정의 여유도, 병력의 여유도 없는
츠메카린에게는 치명적인 골칫거리였다. 그를 보다 못한 왕녀가 직접 검을 쥐고 나서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의 일이었다. 이후로 4년에 이르는 바로 지금까지,
자신을 방해하던 인간들이 도망치자 마수는 포효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난동을 부릴 차례였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작은 인간 여자 하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쨍— 왕녀는 한순간 억눌러가며 그러모았던 마나를 해방했다. 강한 힘, 마치 해일처럼 거대한 힘이 왕녀에서부터 주변으로 펼쳐지자 주변
공기가 금세라도 얼어붙을 듯 팽팽해지며 마치 살얼음이 순식간에 어는 듯한 환청이 들렸다. 그 압박감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신음을 토했다. 마수조차 포효를 멈추고 그쪽을 보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쨍— 살얼음이 깨지는 듯한 환청이
들렸다. 단 이번에 들린 것은 환청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마수가 동상처럼 굳어 거기에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마수가 마비라도 된 것으로 보였겠지만, 그것은 동결이었다. 저만한 크기의 마수를 순식간에 얼려버릴 정도로 거대한 얼음 마법.
이런 규모의 마법은 이론적으로라면 본래 가능하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하게 한 것은 왕녀가 지닌 츠메카린 왕족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한 마력과, 숱한 전투를 거쳐 체득한 요령과, 무모함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마력을 한계까지 소진했을 때에나
가능한 마법이었다.
왕녀의 마법선생은 이런 식으로 마법을 쓰지 말라고 왕녀에게 경고했었다. 마법이란 정신력을 쏟아 붙는
싸움이다. 사람은 체력이 소진되면 죽듯 정신력이 소진돼도 죽는다. 즉 왕녀가 지금 한 건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는 짓이었다. 목숨이
아깝다면 절대 하지 말라고 그녀의 선생이 경고했던 일. 하지만, 왕녀는 이것 외에는 저만한 마수와 싸우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만한 마력을 쏟아 부어도 동결이 유지되는 시간은 단 5초,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왕녀는 손에 들려있던 검을 뽑았다. 제 키만한 장검으로 어지간한 성인 남자도 두 손으로 들어야할 정도의 무게였지만 왕녀는 그것을 한손으로 들어 올리고 도약했다. 검이 대기를 가르고, 그리고,
마수는 ‘깨졌다.’
왕녀의 검 끝에 조각으로 부서져 산산이 흩어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끔찍하면서도 어딘지 아름답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착지한 왕녀는 그 조각들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담담하고 견고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보였다.
왕녀는 그런 모습으로 멍하게 생각했다. 이제 한동안 또 성은 시끄럽겠지. 자신에 대한 험담에 괴담까지 덧붙여져 과연 마법의
딸이라느니 피에 미친 전투광에 괴물이라는 소문도 돌겠지. 그 모두가 사실은, 피나 전투만큼이나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꺼려해서는 이 성은 지켜지지 않는다. 차라리 소문처럼 괴물이거나 전투광이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사실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현기증이 났다. 구역질이 솟구쳤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한꺼번에 이만한 힘을 개방하고 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어느 모습도 이들에게는 보일 수 없었다. 왕녀는 괴로운
한숨을 쉬고는 등을 돌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것은 사악한 저주에 걸린 어느 공주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숱한 이야기 속의 수많은 공주님들이 그러하듯, 츠메카린 왕국의 제1왕녀 뮤레리카 사키아 츠메카린도 성에 갇혀 살았다. 하지만 이 공주님을 가둔 것은 사악한 마왕이나 나쁜 용이 아니었다. 그녀가 짊어진 지위와 이름의 무게였다.
그녀는 자신을 성에서 꺼내줄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녀 자신은 마녀가 아니었지만 자신이 갇힌 이 마녀의 성은 자신의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힘으로, 자신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든 지켜내야만 했다. 거기에 다른 이의 도움을 바라거나 받는 것은
가당치도 않는 얘기였다. 더욱이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바람 따위는 응석일 뿐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츠메카린 왕국의 제1왕녀 뮤레리카 사키아 츠메카린이라는 이름의 무게였다.
원래는 프롤로그여야 했던 그것 ´_`...
용용이... 노트에 적은 분량은 꽤 쌓였는데 타이핑하기가 넘 귀차늠... 노트에 쓸 때는 별생각 없이 쓰는데 타이핑을 하다 보면 자학을 하게 되고 자학을 하다 보면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무너지면... 뭐가 또 무너지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주로 DS가 1부 끝이 나 비축분이 동이 나니 홈 업뎃을 위해서라도 타이핑은... 하지 않을까도 싶지만... 타이핑... 귀... 귀찮아... 도, 독촉당하고 싶다...!
뮤레리카 사키아 츠메카린은 여기서의 츠뮤의 풀네임입니다. 츠뮤는 애칭. 왕녀의 마법선생은 파피엘.
이 도입부에서 나온 '저주'는 (이하는 좀 네타라서 김 두름)
용으로 변하는 저주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님. 츠뮤가 저러며 쓴 마력은 보통 사람이라면 즉시 사망하는 수준임. 약으로 따지면 취사량에서 이미 한참을 벗어남. 쟤가 저러고도 안 죽고 사는 데에는 따로 이유가 있음. 어나더를 보신 분들은 대충 짐작하실 수 있을 듯. 근데 여기서 거기까지 나오게 될지는 잘 모르겠... 아니 이 이야기 도대체 어디로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