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완결 이후의 이야기 하나.
이야기가 끝난 후의 츠뮤, 츠키에테, 레바엔. 이 세 사람의 관계를 한 번 정도는 써보고 싶었어요.
물론 늘 이렇게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아마도)
쓰기 시작한 지가 1년은 넘은 거 같은데 겨우 다 썼네요. 별 내용도 아니건만 왜 이리도 오래 끌었던가.
사실 어디 올린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니 굳이 다 쓸 이유는 없었지만 ´_` 쓰다 만 글이 있는 게 찝찝해서...
당연히 네타 듬뿍이니 안 보신 분들은 패스하시고... 본편 볼 생각 없는 분은 그냥 보셔도 되고 ㅎㅎ
이곳은 전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지금 여기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듯 사방은 피비린내로 가득하고 검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귀 따가울 정도로 울려댔다. 던전 바닥에는 그들이 부숴놓은 스켈레톤들이 가득 쌓여 뒹굴고 있었고, 또 그만한 숫자가 떼로 몰려와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곳은 가히 전장이나 다를 바 없었고, 그것도 그 어느 전장보다 무서운 전장이었다. 그리고 이 전장의 가장 무서운 점이 무엇인가 하면,
“악! 너 이 새끼, 이건 진짜 작정하고 그런 거지?!”
적은 물론 동료조차도 서로를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츠키에테의 칼에 베인 상처 탓에 피범벅이 된 팔을 손으로 감싸며 레바엔이 악악거렸다.
“천만에. 도와줬을 뿐이다.”
레바엔 곁에 있던 스켈레톤을 발로 걷어차 멀리 보내며 츠키에테가 씩 웃었다. 실로 진심이 절절히 깃든 표정이라 레바엔은 울화통이 터졌으나 이제는 대꾸하기조차 지겨웠다. 사실 울화통을 터트릴 처지가 못 되었다. 그 얄미운 면상에도 이미 레바엔이 실수로 스치는 척 길게 그어놓은 상처가 있으니까.
벌써 몇 번이나 주고받은 대사였고, 상황이었다. 애당초 이 상황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허구한 날 얼굴만 봐도 으르렁대는,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워도 시원치 않을 사이인 두 남자가 함께 힘을 합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니.
“젠장, 진짜 못 해먹겠네!!!”
레바엔이 짜증을 내며 덤벼드는 스켈레톤에게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츠키에테를 윽박질렀다.
“네놈에게 여기를 돌파할 생각이 있긴 한 거냐?!”
“그 질문, 네놈에게 돌려주마.”
츠키에테 역시 힘껏 검을 휘둘러 스켈레톤을 부서트렸다. 레바엔과 마찬가지로, 다분히 짜증이 깃든 동작이었다. 레바엔은 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애초에 어째서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드물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그래, 솔직히 네놈과 같이 여기를 돌파하기보다는 그냥 여기에서 처치해 묻어버리고 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 역시 동감이다.”
“이 새끼가 진짜…!”
두 남자가 눈을 부릅뜬 채 서로를 노려보는 와중 시꺼멓고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부순 것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스켈레톤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레바엔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진짜…… 성가시네!!”
츠키에테는 침착하게 전투태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럼 돌아가든지. 츠뮤에게는 네놈이 먼저 도망쳤다고 전해주지.”
레바엔은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네놈이나 먼저 도망쳐라.”
“사양한다.”
그리고 단숨에 대검을 고쳐 쥔 레바엔이, 츠키에테와 동시에 도약해 스켈레톤에게 달려들었다.
“필요한 것이 있어요.”
시작은 어느 한가롭던 오후, 두 남자를 불러 모은 츠뮤가 꺼낸 첫마디였다.
“파이델른이라는, 지금은 멸망한 마국의 고성이 있어요. 그 지하에는 미로로 된 던전이 있는데, 그 던전의 끝에는 이블아이라는 보석이 있대요. 그 자체로도 강력한 유지 마법이 광대한 범위로 발동되는 마법석이라, 파이델른의 고성이 멸망한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힘에 의해 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된 거라고 하더군요.”
턱을 괸 채로 삐딱하게 앉아 심드렁히 이야기를 듣던 레바엔이 툭 내던지듯 물었다.
“그래서? 그게 필요해? 왜?”
“그야, 우리 성에 두고 싶어서. 우리 성, 많이 낡았잖아. 얼마 전에는 걷는데 천장에서 돌조각 하나가 뚝 떨어지더라고. 아무래도 점점 무너져가고 있는 것 같아. 보수를 해야 할 거 같은데, 살펴보니 여기 자체가 워낙 부실공사 수준이라 아예 새로 짓는 게 나을 수준이더라. 근데 왕실에는 지금 그만한 돈이 없어. 알다시피 복지사업에 돈을 다 쏟아 붓고 있는 형편이라…….”
“그래서, 그걸 성에 갖다 두시겠다?”
“응. 좋을 거 같지 않아? 보수공사는 지금 해도 나중에 또 해야 되는 거지만, 이건 영구적이잖아. 천재지변에도 대비할 수 있다고.”
“그래서, 좀 가져다 달라?”
“응.”
“귀찮은데.”
“…….”
심드렁한 대꾸에 실망한 듯 눈을 깜빡이던 츠뮤가, 애절한 표정을 짓고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내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될까?”
“…….”
레바엔은 지금 만년 둔탱이 같던 어느 여자의 진화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여자란 나이를 먹을수록 여우가 돼 간다더니, 설마 이 여자마저 이럴 줄이야…….
잠시 그를 마주한 채 생각에 잠겨있던 레바엔은, 이윽고 씩 미소했다.
“부탁에는 뭐든 대가가 있어야지. 네 부탁 들어주면 뭘 해줄 건데?”
“엣. 뭐가 좋아?”
“바라는 거야 많지. 가령…….”
레바엔은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츠뮤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 순간, 레바엔과 츠뮤 사이에 손이 하나 놓였다.
“됐다.”
그때까지 딱딱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던 츠키에테였다.
“내가 하지.”
두 사람의 고개가 나란히 그쪽으로 돌아갔다. 뭐 씹은 듯한 표정이 된 레바엔이 그쪽을 향해 이죽거렸다.
“호오. 명부의 왕께선 그리도 한가하신가? 그런 일을 직접 다 하시게?”
“소중한 여동생의 부탁인데 무리해서라도 들어줄 가치가 있지 않나.”
“하이고. 그냥 내가 수작 거는 게 싫다고 말하시지 그래?”
“안다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군.”
“이 새끼가 진짜…!”
“그만.”
레바엔이 금세라도 츠키에테에게 덤벼들 듯 으르렁대자, 츠뮤는 사뭇 엄격한 표정과 어조로 말을 잘랐다.
“그렇게 싸울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둘이 같이 가야하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츠뮤를 돌아보았다.
“뭐?!”
“어째서?!”
“이블아이의 던전은 마족의 피를 지닌 자가 두 명 이상 갈 때만 열린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강력한 몬스터가 득실거려서 혼자서는 무리예요. 생각해봐요. 여태껏 탐내는 이가 저뿐 만은 아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 되는 마법석이 왜 계속 거기에 있겠어요? 수백 년간 누구도 쉬 넘보지 못했을 정도의 어려운 입장 조건과 극악한 난이도 탓이지.”
레바엔은 어이가 싹 나간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래서, 지금 날더러 이놈이랑 같이 가라고?!”
츠키에테는 애써 평정을 지키며 반박했다.
“굳이 저 녀석이 아니어도, 같이 갈 마족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츠뮤는 고개를 저었다.
“고대 고위 마족이 아니면 안 돼.”
“…….”
결국 츠키에테도 평정을 지키는 데에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츠뮤.”
“네, 오라버니.”
“차라리 보수공사를 하지 그래. 아니, 아예 성을 새로 지어도 좋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보태주지. 얼마가 필요하든 말만 하면…….”
“그건 싫어.”
츠뮤는 츠키에테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단호히 거절했다. 츠키에테의 표정에 한층 더 난감함이 번졌다. 사실 츠뮤가 금전적으로 도와주겠노라는 츠키에테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츠뮤의 성격을 잘 아는 츠키에테로서는 그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츠뮤가 부족한 예산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느라 고군분투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더 권유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츠키에테는 따지듯 말했다.
“네 자존심이란, 내게 돈을 받으면 상하고 보석을 받으면 상하지 않는 거냐.”
츠뮤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슨 논리야, 그게.”
“일반적인 논리야. 여자는 선물로 보석을 받으면 기뻐하지만 돈을 받으면 불쾌해하지.”
“하지만 내겐 돈보다 보석이 더 민폐다.”
그 말에 츠키에테 못지않게 정색한 츠뮤가 츠키에테를 노려보았다.
“날 위해 보석을 가져다주는 일이 오라버니한테는 그저 민폐야?!”
츠키에테는 당황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날 위해서는 뭘 줘도, 어떤 일을 해줘도 아깝지 않다더니 다 거짓말이었어?! 오라버니도 결국 흔해빠진 남자였구나!!”
“……우와, 공주님이 흔해빠진 여자 같은 소리를 다 하네.”
레바엔이 옆에서 혀를 차자 츠뮤는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너도 싫어?”
“아니, 난 좋…….”
얼떨결에 좋다고 대답하려던 레바엔은, 그 순간 츠키에테와 눈을 마주치곤 퍼뜩 정색하며 소리쳤다.
“좋지만!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저 자식이랑 같이 가는 건 싫다고!!”
“동감이다.”
츠키에테는 레바엔이 뜻대로 반응한 것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게 서로를 싫어해?? 형제잖아!! 사이좋게 좀 지내라고 그간 누누이 이야기했는데!”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죽어도 무리야.”
“그래서, 날 위해 함께 던전을 도는 정도의 일도 못해주시겠다?”
츠뮤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한톤 내려갔다.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그 목소리만큼이나 묵직하고 서늘한 침묵이 흘렀다. 다들 굳어있는 와중, 츠뮤는 조용히 일어섰다.
“됐어. 난 강요는 안 해.”
두 남자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을 자른 츠뮤는, 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결과에 실망할 뿐이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한 츠뮤는, 돌아섰다.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
“…….”
그리고 긴 침묵 끝에, 츠키에테와 레바엔은 떫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너무나도 떫은 표정이고 떫은 심정이었지만, 두 남자는 결국 서로에게 암묵적인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녀에게 흔해빠진 남자만은 될 수 없었으므로.
파이델른의 성은 과연 불길했다. 거무스레한 담쟁이덩굴로 온통 뒤덮인 검은 성은 음침하기 그지없었고, 주변을 맴도는 검은 안개가 그 불길함에 힘을 더 보태주었다. 그 속을, 츠키에테와 레바엔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다섯 보 정도의 간격을 유지한 채 터덕터덕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던전의 입구는 더욱 불길했다. 성벽과 마찬가지로 거무스레한 덩굴에 뒤덮인 데다가 새까만 먼지가 전체를 뒤덮고 있어 덩굴과 문이 구분도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를 불길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레바엔이 중얼거렸다.
“여기가 던전의 입구인가…….”
그리고, 손바닥으로 문을 밀었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을 더 줘 봐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레바엔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문을 마구 밀어댔다.
“안 열리는데?!”
그를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츠키에테가 말했다.
“고대 고위 마족 둘이 함께 와야 열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왔잖아!”
“이렇게 떨어져있는데 던전의 입구가 어떻게 두 사람이 온 거라고 알아먹겠나?”
레바엔은 이를 빠득 갈며 츠키에테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여전히 다섯 보 정도의 간격을 유지한 채였고, 츠키에테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레바엔이 하는 짓을 방관하고 있었다.
“알면 좀 가까이 와!!”
“싫은데.”
“나도 싫다고! 어쨌거나 들어가긴 해야 할 거 아냐!!”
츠키에테는 정말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닿지 마라.”
“내가 할 소리다.”
둘의 거리가 한 뼘으로 좁혀졌다. 둘 다 뻣뻣하게 몸을 굳힌 채 결코 그 이상으로는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스치듯 옷깃이 닿자 츠키에테는 미간을 찌푸리며 닿았던 옷깃을 털어내었다.
“불쾌하군.”
“동감이다.”
레바엔은 으르렁대며 다시 문을 밀었다. 이번에는 열렸다.
“열렸다.”
“나도 보고 있으니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다.”
“그냥 말한 거거든?”
“꼭 필요한 말만 해라. 필요 없는 대화는 가능한 한 하고 싶지 않군.”
“혼잣말이었다고!”
“날 보며 말했잖나.”
“아니거든? 그냥 본 거거든?”
“아무튼 봤잖나.”
“옆에 있기에 본 게 잘못이냐!”
“잘못이지. 될 수 있으면 보지도 마라. 불쾌하다.”
“너 임마, 자꾸만 이렇게 삐딱하게 나올래?!”
“삐딱하게 구는 게 잘못이나. 그게 잘못이면 네 놈은 이미 천벌을 받았을 텐데.”
“이 새끼가 진짜…!”
열린 입구는 안중에도 없이 으르렁대는 레바엔과 츠키에테를 향해 어느 순간,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문득 느껴진 살기에 두 사람이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뭔가 시꺼먼 것들이 입구…… 즉, 그들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레바엔이 경악했다.
“스켈레톤?!”
“……이 던전을 지키는 자들인가 보군.”
“처음부터 저만한 숫자가 말이 돼?! 저건 거의 군대 수준 아냐?!”
“군대겠지. 원래는 성이었던 곳이니, 군대 하나를 고스란히 스켈레톤으로 만들어서 이 성을 지키게 둔 것일지도.”
“그럼 저것들이 모두 흑마법에 의해 변이된 인간이라고?!”
“그렇겠지.”
냉담하게 말한 츠키에테가 레바엔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 무섭나? 싸우기 꺼림칙하기라도 한 건가? 그럼 꼬리를 말고 도망치던지.”
“……하! 저만한 숫자와 혼자 싸워도 괜찮으시다?”
“그렇지.”
“웃기시네! 너야말로 무서운데 괜히 허세 부리는 거 아냐?!”
“그럴 리가. 오히려 난 혼자 싸우는 쪽이 편하다.”
“꽤 자신만만한데, 뭣하면 각자 쳐부순 스켈레톤의 숫자라도 헤아려볼까?”
“그러시던지.”
“좋아!”
등에서 대검을 뽑아 공격태세를 취한 레바엔이 스켈레톤을 향해 덤벼들려는데,
쾅!!! 그 순간 사방을 뒤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섬광이 일었다. 바람과 번개의 마법이었다. 곧 빛이 사그라지자 스켈레톤 군대는 물론 마법이 닿았던 바닥까지 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숯의 경계는 정확히…… 레바엔이 디딘 발, 바로 한 뼘 앞이었다.
“악!!!”
레바엔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등을 홱 돌려 그 마법을 시전한 이를 노려보았다.
“이 새끼,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도 맞을 뻔했잖아!!”
“그거 유감이군. 맞지 않아서.”
태연한 대꾸에 레바엔의 어이가 폭발했다.
“그러니까 지금 날 노렸다, 이거냐?!”
“설마 그럴 리가. 네가 그렇게 무식하게 덤벼들 줄 몰랐던 것뿐이다.”
“그런데 왜 그런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데?!”
“기분 탓이다.”
아쉬운 기색이 한층 더 가득해진 얼굴의 츠키에테가 뻔뻔스레 대꾸했다. 그리고 앞을 보았다.
“그보다, 이런 쓸데없는 걸로 논쟁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덩달아 고개를 돌린 레바엔의 눈에 방금 그만한 수가 죽고도 또 그만한 수로 몰려드는 스켈레톤들이 보였다. 츠키에테가 다시 마법을 시전하려는 순간,
레바엔이 도약했다. 시꺼먼 섬광을 내뿜는 대검이 공중을 세차게 가르는가 싶더니 지면에 내리꽂힌다. 쾅!!!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사방이 진동하며 바닥에 균열이 일었다. 흙먼지가 가시자 상황이 보였다. 시꺼멓고 거대한 원위에 까맣게 타들어간 것처럼 부서진 스켈레톤들이 처참하게 널려있었다. 그리고 그 범위가 닿은 곳은…… 츠키에테의 발, 바로 한 뼘 앞이었다. 질린 얼굴이 된 츠키에테가 고개를 들었다.
“너 이 자식…!”
“유감이군.”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레바엔이 이죽거렸다. 그 다음 순간, 츠키에테가 휘두른 검이 레바엔의 귓전을 스쳤다. 검 끝에 레바엔의 머리카락 몇 올이 베어져나갔다. 욱한 레바엔이 제 검을 꽉 쥐며 츠키에테를 노려보았다.
“정말로 해보자는 건가?!”
“그럴 리가.”
츠키에테의 검이 레바엔의 뒤에 서있던 스켈레톤에 박혀 휘둘러졌다. 한 마리 남은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도와준 거다.”
“하…! 네 놈이 있던 위치라면 굳이 내 앞에서 날 스쳐 찌르지 않아도 됐을 텐데?”
“기왕이면 이쪽이 낫잖나.”
서슬 퍼렇게 자신을 노려보는 레바엔을 향해, 츠키에테가 보란 듯이 피식 웃었다.
“과연 그럴까?”
말이 나오기기 무섭게 레바엔이 검을 휘둘렀다. 검은 그대로 츠키에테의 뺨을 스쳐지나가 뒤에 있던 스켈레톤에게 박혔다. 얇게 베인 츠키에테의 뺨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은혜는 바로 갚아야지.”
다음 순간, 츠키에테는 노려보거나 망설이지조차 않았다. 소매 자락에서 나온 단검이 공중을 가르고 날아가 저쪽에 있던 스켈레톤에게 박혔다. 물론 그 검은 레바엔을 스쳐지나갔다. 그냥 스쳐지나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팔을 베고 지나갔다.
“악! 너 이 새끼, 이건 진짜 작정하고 그런 거지?!”
“천만에. 도와줬을 뿐이다.”
“젠장, 진짜 못 해먹겠네!!! 네놈에게 여기를 돌파할 생각이 있긴 한 거냐?!”
“그 질문, 네놈에게 돌려주마.”
“애초에 어째서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드물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그래, 솔직히 네놈과 같이 여기를 돌파하기보다는 그냥 여기에서 처치해 묻어버리고 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 역시 동감이다.”
“이 새끼가 진짜…!”
두 남자가 눈을 부릅뜬 채 서로를 노려보는 와중 시꺼멓고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부순 것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스켈레톤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레바엔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진짜…… 성가시네!!”
“그럼 돌아가든지. 츠뮤에게는 네놈이 먼저 도망쳤다고 전해주지.”
“어림도 없는 소리. 네놈이나 먼저 도망쳐라.”
“사양한다.”
그리고 단숨에 대검을 고쳐 쥔 레바엔이, 츠키에테와 동시에 도약해 스켈레톤에게 달려들었다.
전투는 치열하게도 계속됐다. 싸우면 싸울수록 서로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났다. 그 상처의 절반이 대부분 적이 아닌 아군이 낸 것이라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서로의 검이, 마법이, 능력이 적을 공격하는 척하며 서로를 공격한다. 그 피를 부르는 신경전은 쉬 끝나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이 이런 신경전을 벌이지 않고 힘을 합쳐 싸운다면 이것이 이렇게 오래 걸릴 전투조차 아니라는 것을, 이래서는 이 싸움이 빨리 끝나기는커녕 끝나지조차 않으리라는 사실을 둘 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저 상대가 빌어먹을 놈에 썩을 놈이었다. 그 사실을 서로가 머리에서 계속 생각하는 한, 이 싸움이 끝날 리는 없어보였다.
“……아무튼, 루네스 에민카렌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에, 가장 번영했던 성국이 지은 성인걸. 대륙 최고의 건축과들과 어마어마한 인력이 동원되고 신녀와 신관들의 성력까지 축적되어 지어진 성이야. 몇 천 년이 지나도 끄떡없겠지.”
이델로즈는 치즈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말했고, 츠뮤는 포크를 치즈 케이크에 꽂으며 물었다.
“이런다고 그 둘의 사이가 좋아질까요, 이델로즈?”
“되든 안 되든 노력은 해봐야지. 그 꾸준한 노력이 쌓여 언젠가는 결실을 이룬다는 게 우리 여왕님의 신조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 음, 그 두 사람을 사이좋게 만드는 일은…… 뭐랄까. 나라를 재건하는 일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달까…….”
“뭐, 던전 하나를 돌며 함께 싸웠다고 당장 사나이의 우정이 끓어오르진 않겠지.”
“아무래도 한 번으로는 무리겠죠. 미리 또 그런 던전을 더 찾아둘까요?”
“응, 그게 좋겠다.
“다음에는 뭐라고 말하며 보내지…….”
츠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서를 뒤적였다.
당장은 두 사람이 도는 던전에 끝이 온다 한들, 진정한 끝이 오는 때는 요원할 것 같았다.
잘 봐줘서 고마워! > < 글들은 내킬 때 천천히 보세요 ㅎㅎ 왠지 압박해버린 거 같아서 미안하네.
그리고 우리 아가씨 따뜻하게 안아줘───(˚∀˚)───!!! 꺄하하하하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