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텐미온의 왕자, 하텐미온 페이버티니아 온 카스텔이 츠메카린의 여왕 후계자, 츠메카린 츠뮤를 정식으로 만난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여왕을 죽여 인형으로 부리며 갖은 폭정을 저지르던 간악한 혈육의 그늘 아래에서 7년간, 조용히 몸을 지키며 뒤로는 동맹국에게 몰래 지지를 구하고 은밀히 귀족들을 포섭해 세력을 모우는 일을 해오다 기어코 어제 왕위를 되찾아낸 16세의 어린 소녀는, 마치 늘 그래왔다는 듯 자연스럽게 옥좌에 앉아있었다.

“카스텔 왕자님. 제 무례한 요청에 기꺼이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시고, 커다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보답은 언젠가는 반드시 하겠습니다.”

어리고 가냘픈 소녀였으나, 그녀가 장엄한 알현실이나 화려한 옥좌에 앉아있는 모습은 결코 어색해보이지 않았다. 아니, 위엄 있게 말하는 모습이 이미 여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카스텔은 문득 자신의 여동생이 그녀와 동갑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부러라도 깨닫지 않으면 실감할 방도가 없었다. 철딱서니 없는 그 녀석과는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하지만 그 녀석이 철없다는 생각은 여태껏 해보지 않았다. 특별한 쪽은 그녀였다. 아마도 같은 또래와는 철저히 다른 시간 속을 살아온 것이겠지.

“그다지 도움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카스텔의 씁쓸한 대답에, 츠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덕분에 그의 간악함을 귀족들이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그 무엇보다 좋은 본보기가 되었지요. 덕분에 그의 지지 세력의 발언권이 파고들 틈 따위는 전혀 없을 것이며, 여론은 그를 철저히 숙청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질 겁니다. 만약 어제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면 그에 대한 지지론이나 동정론이 일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히려 저희야말로 사과할 일이지요. 동맥국의 의리로서 마땅히 감춰야 했을 치부를 들춰버려서.”
“아, 그 일은…….”
“네. 당연히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도 입막음을 해두지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저희의 치부… 어제 보셨던 모든 일을, 왕자님 또한 모른 척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나라의 위신도 문제지만, 어찌됐던 제 친혈육입니다. 반역자라는 낙인을 널리 찍고 싶진 않군요. 그에 대한 처신은 성 안에서 끝냈으면 합니다.”
“그를 어쩌실 생각입니까?”
“고민 중입니다. 허나,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는 치러야겠지요.”
“그보다, 생각보다 빨리 포기하더군요. 그 냉혈한이 크게 충격 받은 듯한 표정을 다 짓던데, 공주님과 생각 이상으로 친밀한 사이였던 것 아닙니까?”
“…….”

차분하던 왕녀의 안색에 일순 동요가 일며 입술이 곤란한 듯 꼭 다물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애써 동요를 억누른 츠뮤는 다시 여왕 후계자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카스텔 왕자님. 이번 일을 계기로 저희 츠메카린은, 예전처럼 하텐미온과 동맹국으로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가고 싶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공주님.”

카스텔은 짐짓 심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츠뮤의 표정이 다시 굳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우리도 그만, 예전처럼 말했으면 싶은데.”

츠뮤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가,

“……네. 카스텔 아저씨.”

이내 표정을 누그러트리며 웃었다. 츠메카린의 여왕 후계자에서, 7년 전,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천진하고 자그마한 소녀와 닮은 모습으로 돌아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오랜만이지. 잘 지냈어?”
“보다시피요. 아저씨는 잘 지내셨어요?”
“보다시피지.”
“변한 게 그다지 없으셔서 놀랐어요. 이제 30대 아니세요?”
“이크, 아픈 곳을 찌르는 구나.”
“죄송해요. 그치만, 정말로 20대였을 적과 똑같으셔서.”
“넌 많이 변했구나. 이제 여자가 다 됐어.”

츠뮤는 부끄러운 듯 대답 대신 수줍게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스텔은 자신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츠메카린과 하텐미온의 교류가 끊기지 않았을 무렵, 외교관의 신분으로 대신들과 자주 오던 성에서 뭐가 그리 궁금한지 벽 너머로 자신들을 빼꼼 살펴보곤 하던 9살의 꼬맹이는, 이제 눈부시게 아름다운 숙녀가 되어있었다.

“폐하는 여전하세요?”
“……그래.”

츠뮤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카스텔은 조금 괴로운 듯 씁쓸히 답했다.

“여전히 나와는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하려 하지 않으시기에, 속도 여전한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그토록 어진 왕이라 불리셨던 분이, 성마대전 이후로는 뭐에 홀린 듯 변하셔서는…….”
“‘그것’외의 폭정은 안 하시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저씨가 안 됐어요. 원래라면 진작 왕이 되셨어야 하는 몸이신데.”
“……그 발언은 좀 위험한 걸.”
“아니, 정말로.”

위험한 말이었으나, 또한 사실이기도 했다. 현 하텐미온 국왕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미 후계자인 카스텔이 왕이 되고도 남았어야 했다. 하지만 왕은 지긋한 연세에도 꼿꼿하게 왕위를 지키고 있었고, 카스텔은 나이가 30세가 넘도록 그대로 후계자인 채였다.

“어서 물러나셔서 아저씨가 왕이 되셔야, 두 나라의 외교도 쉬워질 텐데요.”

16세의 소녀가 하는 말치고는 참 가차 없었으나, 그것 또한 사실이었다. 9년 전, 두 나라의 외교가 단절된 건 츠메카린의 일방적인 행동 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네 오라버니라는 자 말인데, 난 예전 성을 오가면서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어. 아니, 사실은 존재조차도 몰랐지. 그런데 그런 자가 7년간 네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다니.”
“……유폐된 아이였으니까요. 어마마마께서는 그런 공식석상이 있을 때에는 근처에도 못 가게 하셨어요. 외부에 알려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셔서, 정말이지 과민할 정도로 막으셨죠. 심지어는 가두어 놓기도 하시고,”
“그랬군.”
“가엾은 사람이에요.”
“그와 친했나?”
“네.”

이번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표정에 드리운 침울함도 굳이 걷어내려 하지 않았다. 그런 츠뮤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다, 카스텔은 말을 이었다.

“그와도 종종 체스를 두곤 했어?”
“아니요.”
“그의 취미가 아니었나? 넌 좋아했잖아.”
“그와는, 어떤 식으로든 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랑은 괜찮고?”
“아저씨와 저는 좋은 협력자인 동시에 호적수지요.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흔히 그렇듯.”

츠뮤는 그렇게 대답하더니, 맹랑하게 웃어 보였다.
츠뮤가 9살일 무렵, 카스텔이 성에 올 때면 약속처럼 함께 체스를 몇 게임씩 두곤 했다. 어린 아이가 체스판을 앞에 두고 홀로 놀고 있는 게 신기해서 심심풀이 삼아 상대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 자주 보여주곤 하던 표정이었다.

카스텔은 그때 졌다. 방심해서라고 생각하고 다시 둔 게임은 신중히 임해 이겼으나, 3번째에는 또 져버렸다. 두 사람의 게임은 그런 식으로 적은 차이를 둔 채 비슷한 승률을 유지했고, 마지막은 츠뮤가 이겨 같은 승률이 되었다. 고작 9살짜리 꼬마와 그랬다. 그러니, 지금은 과연 어떠할지.
아마도 자신은 가능한 빈틈없고 완벽한 승리를 위해 그녀가 모아두고 사용한 카드 한 장에 불과했을 것이다. 없어도 승리에 차질은 없으나, 만약의 경우 기꺼이 대비책이 되어줄, 그런 말.
그녀의 게임은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츠뮤의 말 그대로였다. 그녀는 좋은 협력자이자, 만만치 않은 호적수였다.

“그런데, 결국은 그 싸우고 싶지 않던 상대와 싸워버렸군?”

“…….”

안색에 어두운 빛이 드리워진 츠뮤가, 잠시 생각에 잠기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삼일 후, 여왕 페하의 장례식이 정식으로 거행될 겁니다. 이제는 편히 쉬시겠지요.”
“아아, 삼가 조의를.”

카스텔은 멍하게, 이제는 빈 옥좌를 바라보았다.
츠뮤가 여왕 페하라며 자신의 어머니를 칭하는 호칭이, 자신의 오라버니를 칭할 때의 호칭보다 더 싸늘하게 들렸다는 건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츠뮤는 이런 식으로 곤란한 화제를 맞닥트리지 않고 돌려버리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그것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이곳이 그 츠메카린이라서 일까. 더할 나위 없이 스산하고, 불길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사형시켜야 합니다.”

라는 말을 꺼낸 것은 밀렌 백작이었다. 그는 굳건하고 울분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고, 주변에 서있는 귀족들의 표정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옥좌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다, 츠뮤는 한숨 쉬었다.

“……꼭 그리해야겠습니까?”
“공주님, 친혈육이라 약해지시는 마음은 알겠으나, 공은 공이고 사는 사입니다. 아직 어리셔서 쉽지는 않으실 것이나, 왕이 되실 거라면 이를 확실히 분별하셔야 합니다.”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백작의 말투에, 츠뮤는 미간을 찌푸렸다.

“왕이 되다니요? 누가?”

불쾌한 듯한 반응에, 밀렌은 당황해 되물었다.

“아, 안 되실 겁니까?”

바보 같은 질문이다. 츠뮤는 조소하며 대꾸했다.

“저는 이미 왕입니다. 폐하라고 부르도록 하세요. 밀렌 백작.”
“하, 하지만, 공주님께서는 아직 나이도 어리시고…!”
“여왕 폐하께서 서거하시고 하나 있던 후계자마저 옥으로 들어간 상황에 그런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이제 제가 이 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이고, 왕입니다.”
“즉위식도 아직 하지 않으셨지 않았습니까!”
“이미 동맹국인 하텐미온으로부터 정식으로 왕이라 인정도 받은 몸입니다. 밀렌 백작, 굳이 그렇게 왕위를 공석으로 비워두고 싶어 하는 건, 어떤 불온한 야욕이 있어서라고 봐도 좋겠습니까?”

츠뮤는 싸늘히 그를 노려보았다. 불과 16세의 소녀가 뿜어내는 위압감이 대접견실을 가득 메웠다. 넋을 잃고 옥좌를 바라보던 밀렌이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폐하.”

폐하. 그 호칭에, 츠뮤는 만족스레 웃었다.

“어리다고요, 밀렌 백작. 제 오라버니, 츠메카린 츠키에테가 여왕을 죽이고, 그녀를 인형으로 부려 당신들을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가 고작 13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어린가요? 제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래 뵈도 두 폭군의 딸이며, 여동생입니다. 우습게 보지 말도록 하세요.”
“네. 죄송합니다. 폐하.”

밀렌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바라보며 츠뮤는 가능한 오만하게 웃어보였다. 귀족들이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수군대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지나쳤나. 허나, 이 정도는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밀렌 백작의 의견에는 저도 공감입니다. 폐하.”

옆에 서있던 칸 자작이 나서서 그렇게 말했다. 행여 츠뮤가 오해할 새라, 얼른 폐하라는 호칭을 붙이며.

“폐하를 죽인 것만 해도 대역죄인데, 그 옥체를 인형으로 만들어 여기 있는 모든 귀족들과 백성들을 속이기까지 했습니다. 그간의 폭정 중에 목숨을 잃은 이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밀렌 백작만 해도 죄 없는 딸을 잃었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어제 저지르려고 했던 만행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짓입니다.”

허나 그대들도, 어제 여왕을 죽이려 들지 않았었나.
츠뮤는 그 말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다. 그녀에게서 말이 없자, 이번에는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히센 공작이 나섰다.

“폐하. 그런 죄인을 살려두는 선례를 남겨둬서 훗날 좋을 것도 없거니와, 폐하에게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 간악한 짓을 저지른 자입니다. 살려두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습니다.”

옆에 서있던 또 다른 귀족이 나섰다.

“게다가 강한 힘을 지닌 마법사입니다. 살려두기에는 너무나도 두려운 존재입니다!”
“살려둘 이유가 없습니다! 깔끔하게 사형 시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지 세력들도 모조리 찾아내어 숙청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귀족들의 말을 들으며, 츠뮤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태도를 바꾸어 나오는, 자신의 치부를 들춰내려고 한 자를, 자신들을 농락한 자를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교활하고 비겁한 자들. 그들이 환멸스러웠다. 역겨울 정도로,
그래. 예상했던 일이었다. 카스텔에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나. 어차피 결론이 같을 거라면, 괜히 오래 끌어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여기 모인 귀족들에게 정에 얽매이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어리다는 이유로 우습게 보일지도 모를 자신이다.

“……그래요.”

츠뮤가 무겁게 입을 열자, 술렁이던 귀족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다들 그리 생각하신다면, 마땅히 그리해야지요.”

이리 쉽게 결론이 날 줄은 몰랐던 듯 아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귀족들에게, 츠뮤는 싸늘히 웃어보였다.

“그리고 공연히 오래 끌 것도 없겠지요. 내일 아침, 동이 트자마자 사형을 집행하겠습니다.”





창살 너머로 반으로 잘린 달이 보였다. 어둡고 습한 벽에 지친 듯 기대 앉아, 그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창살 너머로 바람이 일자 메케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휘어 감았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그, 츠메카린 츠키에테는 말했다.

“식사라면 필요 없어.”

인기척을 낸 누군가가 멈칫하며 동작을 굳히더니 대꾸했다.

“……그렇다는군요.”

대답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옥지기 뒤로 누군가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대화하시겠습니까?”
“그래. 자리를 피해 주겠어?”
“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짙은 무채색의 로브를 두른 자는 옥지기가 문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어둠 속에서 나와, 츠키에테가 갇혀있는 옥 앞에 천천히 다가왔다.

“기분은 좀 어떠세요?”

그가 창살 앞에 무릎 꿇듯이 앉아 후드를 벗는 것을 바라보며, 츠키에테는 대답했다.

“……끔찍해.”

후드 속에서 길고 붉은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린다. 창살 너머로, 친숙한 눈동자가 낯설게 자신을 바라본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츠키에테는 쓰게 웃었다.

“일단 칭찬해주지. 잘했어.”

츠뮤는 무표정하게 금빛 눈동자를 깜빡였다.

“……진심인가요?”
“그래. 정말로, 완벽하게 속았어. 이 내가,”

창살 너머로 두 토막으로 잘린 달이 비친다. 이제는 창살 하나를, 배신이라는 단어를 사이를 두고, 반으로 갈려버린 남매가 각자의 공간에 있었다. 그 건너편에서, 가만히 서로를 응시한다.

“……원망하지 않으실 건가요?”
“너야말로.”

기댄 몸을 일으키며 츠키에테는 나직이 물었다.

“언제부터 알았지?”
“……처음부터.”
“처음부터…라.”

츠키에테는 또다시 쓰게 웃었다. 허탈한 듯한 웃음이었다.

“7년, 고스란히군. 7년 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약하고 순진한 여동생을 연기하며, 내게 웃어주고, 내게 이야기하고, 내게 투정을 부리며, 나와 함께 하는 그 7년 동안, 쭉.”

거기에서 말을 멈춘 츠키에테는, 고개를 들어 잠시 츠뮤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날 원망했었나?”

그 질문에 잔잔하던 수면에 파편이 튄 듯, 금빛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며 일렁였다. 츠뮤는 그대로 츠키에테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로브 사이로 가느다란 손가락이 뻗어져 나와서 창살을 잡았다. 거기에 바싹 몸을 붙이며, 츠뮤는 그를 노려보았다.

“어째서 내 어머니를 죽이던 그날, 나도 함께 죽이지 않았죠?”

뜻밖의 질문에, 츠키에테의 표정이 일순 굳는다.

“당신이라면 왕위를 노릴 때에 내가 가장 걸림돌이 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츠키에테는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아니야. 츠뮤, 알고 있잖아? 내가 여왕을 죽인 것은, 왕위를 노려서가 아니라…!”
“그렇다면, 차라리 그때 날 약으로 재우지 그러셨어요? 당신이 내 어머니를 두 번째로 죽이려고 했던 어제가 아닌, 처음으로 죽였던 그때에!”

츠키에테는 움찔 몸을 떨었다. 창살 너머로 보이는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뺨을 타고 흘러 턱밑으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어둠에 드리워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은 입술이 움직이며 울음이 섞인 말을 내뱉는다.

“그래서 내가 아무 것도 모르게, 내가 내 어머니의 시체를 보는 일도 없이, 그렇게 평생 아무것도 몰랐을 수 있게! 아니, 역시 당신이 날 죽였어야 했어. 그랬더라면 나도 당신을 속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복수, 복수, 복수! 귀 따갑게 들어가며 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배신 따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손이 창살을 꽉 움켜쥐었다. 무너질 듯 거기에 기대, 츠뮤는 오열했다. 츠키에테는 그 눈물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츠뮤가 울 때면 늘 그러듯 눈물을 닦아주고, 달래며 안아줄 수도 없이 그저 바라만 보는 내내, 츠뮤는 정말 한참을 울었다. 옥 안은 죽은 듯이 고요해 울음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또렷이 귀를 파고드는 그 소리를, 츠키에테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츠뮤가 돌연 눈물을 훔치며 일어섰다. 다시 후드를 쓰더니, 말도 없이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츠키에테는 멍하게 츠뮤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창살의 틈이 조금 벌어진 것을 발견했다. 자물쇠 하나가 그 앞에 떨어져 있었다.
……설마… 라고 생각하면서도, 츠키에테는 다가가 창살을 밀어보았다. 분명히 단단히 잠겨있었을 그것은, 약간 힘을 줬을 뿐인데도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하!”

츠키에테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네 결론이냐. 츠메카린 츠뮤.

츠키에테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다시 달을 올려다보았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바깥은 조용했다.
그래. 정말이지, 지나치리라만치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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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nother Another CHUMEKARIN,Ⅰ. 마녀의 땅 - #chapter 7, 굴레 ①
“본국으로 돌아가시죠.” “…….” 카스텔은 말없이 앞의 옥좌를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그 옥좌에 앉은 청년을. 노골적으로 적의가 담긴 시선이었음에도, 그는 개의치 않고 태연자약한 얼굴로 삐딱하게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  
3 Another Another CHUMEKARIN,Ⅰ. 마녀의 땅 - #chapter 7, 굴레 ②
다음날 아침은 화창했다. 루네스 에민카렌으로서는 드물게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을 관통해 내려오는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다. 설렘도 짜증도 배가 되는, 그런 날씨였다. 레바엔은 건물 밖의 문 앞 계단에 심드렁히 기대 앉아...  
2 Another Another CHUMEKARIN,Ⅰ. 마녀의 땅 - #chapter 8, 속박 ①
성의 남서쪽에는 리엘 로이젠카의 탑, 혹은 츠메카린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탑이 하나 있었다. 성의 본관과 조금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그 탑은 성을 정문에서 봤을 땐 잘 보이지 않게 다른 건축물들에 가려져 있어 ...  
1 Another Another CHUMEKARIN,Ⅰ. 마녀의 땅 - #chapter 8, 속박 ②
두 사람이 당도한 곳은 성을 조금 벗어나있는 한적한 공터로, 비탈길 중간에 숲을 깎아낸 듯한 평지가 나무들을 둘러싼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검술을 수련하던 곳이지.” 그곳을 둘러보는 자신에게 츠키에테가 말하자...